[신문보도] 제가 모시면 당신은 대통령급입니다

서울 삼성동 아셈 컨벤션센터 부근은 경호 전문업체인 가엘 씨큐리티의 양재열(53) 대표에게 의미가 큰 곳이다. 11월 12일 만난 그는 2000년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경호를 맡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청와대 경호실 부장으로서 행사 1년 전부터 임시 조직을 만들어 준비했다.

주변 통제가 가장 큰일이었다. 부근에 현대백화점,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사람들 왕래가 잦은 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주변 상권 대표들과 회의를 수도 없이 했다. “국제 행사 개최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죠. 담배를 하루에 세 갑 이상 피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행사는 무사히 끝났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폐회사에서 경호를 칭찬했다. 양 대표는 부장에서 곧바로 처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었던 비결로 관련 부서와의 유기적인 협조를 꼽았다. 행사 경호에는 14개 안팎의 기관이 참여한다. 경찰, 군, 국정원뿐 아니라 법무부, 외교통상부도 관여한다.

청와대 경호실은 이들 기관을 종합 관리한다. 양 대표는 대통령에게 긴급보고를 해서라도 각 기관 간 의견을 조율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경험을 살려 2002년 한·일 월드컵,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경호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양 대표는 1981년부터 25년 동안 청와대 경호실에서 대통령 경호를 맡은 요인 경호 전문가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두 그의 경호를 받았다. 그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서도 매일 아침 조깅을 해서 경호원들은 꼭두새벽부터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아침 6시부터 조깅을 한다면 새벽 4시부터 안전조치를 준비해야 했죠. 그래서 새벽 3시에 일어났죠.” 지난 9월 양 대표는 가엘 씨큐리티란 경호 회사를 설립했다. 대통령 경호 경험을 살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든 것이다. CEO와 그들의 자녀 경호를 주된 업무로 삼는다.

“2006년 청와대 경호실을 나온 후 대형 사설 경호 전문업체 몇 곳에서 고문, 부회장, CEO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갔다면 2~3년 동안 자리를 보전하며 얼굴마담으로 영업을 했겠지요. 그보다는 직접 만든 경호업체에서 제 나름의 경호 철학을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그가 창업하는 데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양 대표는 밝혔다. “예비역 중령 출신인 김 회장도 50대 중반에 사설 경호 전문업체를 만들었죠. 거기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가엘 씨큐리티란 이름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양 대표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지어줬다. ‘가엘’은 천국의 문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의 장인 ‘미카엘’에서 따왔다. ‘가엘’의 ‘엘’은 하느님을 뜻하기도 한다. ‘하느님이 지켜준다’는 의미도 들어 있는 셈이다.

창업 초기라 회사 규모는 아직 작다. 사무실은 서울 수서동에 있다. 기업들과의 계약 시즌을 맞아 양 대표는 요즘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여러 기업이 양 대표의 경험과 경호 노하우를 높이 사 문의가 많다고 한다. 양 대표는 공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다 우연히 청와대 경호실에서 일하게 됐다.

ROTC 출신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한 그는 얼마 안 돼 공수부대로 차출됐다. 그러던 어느 날, 청와대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행정담당 공무원을 뽑나 보다 싶어 시험을 봤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치른 것은 청와대 경호실 직원을 선발하는 첫 공채 시험이었다.

1979년 10*26 사태가 터지고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 대부분 경질된 후 도입된 새로운 경호원 선발 방식이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경호실 직원으로 특채했다. 선발은 됐지만 청와대 경호실에서 보낸 첫 6개월은 고난의 시간이었다.